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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11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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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린듯한 연기를 보여준 '양조위'



어젯 밤 늦게 <색,계>를 봤다.
새벽 4시까지 머릿 속이 부산스러워서 잠을 잘 못 잤다.

얼마만이지?
극장에서 영화 한 편 본 뒤, 그 여파에 잠 못자고 속 번잡스러워지는 이런 경험이.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 마지막이었던가?

세상살이가 1,2년 늘어갈 수록 웬만한 자극에는 자꾸만 무뎌져서
뭘 보거나 뭘 들어도, 돌아서면 다 잊고 1초만에 현실로 돌아와있곤 했다.
컴컴한 극장 나와서 콜라 한잔 들이키면 대부분의 영화는 곧바로 기억 나지도 않았는데.

그러나, <색,계>를 본 뒤엔 불편하면서도 지나치게 강렬한
감정의 여진이 남아있는데,  
이거 진심으로 피.곤.하.다.

이안 감독의 영화는 <아이스 스톰> 때도 그랬다.
그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세계는 느리고 고요하게 흘러가는 듯 보이지만,
그 아래 끔찍하고 강렬한 소용돌이가 숨겨져 있어서
가끔, 순식간에 현실의 고요함을 뚫고, 폭발하는 순간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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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의 걸작 <아이스 스톰>

영화를 보며 가장 놀랐던 장면은 90분의 시간이 흐른 뒤
처음으로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정사 장면이었는데,
그 순간이 바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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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가까운 정사 전에 양조위는 이렇게 고요하게 앉아있다.


'정사' 보다는 '폭력', '강간'에 가까운 그 장면에서
비로소 주인공 '이'(양조위)가 지친 눈빛을 지닌 조용한 남자가 아니라
동포들을 잡아다 고문하고 죽이는 잔인하고 냉혹한 정보대장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 장면과 비견될만한 장면으로 기억나는 건 영화 <폭력의 역사> 중 한 장면 정도?
 하지만, 그 장면도 이에 비하면 온순하다.)

사람들은 신인같지 않은 '탕웨이'의 연기에 대해 많이 얘기한다.
그녀도 물론 대단히 멋진 연기를 해냈지만,  
나는 선하고 왜소한 이미지를 지닌 배우 '양조위'의 연기에
할 말을 잊을 정도로 놀랐다.

이건 내공있는 배우 양조위의 재능에, 이안 감독의 탁월하고
정확한 연출관이 빚어낸 결과다. 

"항상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면서 잔인함과 자기 부정을 동시에 품고 있는 ‘이’는 매우 복잡한 캐릭터다. 사랑을 갈구하면서, 사람을 꿰뚫어 보면서 분노가 터져 나와야 하는데 양조위는 그런 연기를 보여주기에 최상의 눈빛을 지녔다" - 이안 감독

이건 감독이나 배우가 각자 혼자 이루어낼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이런 캐릭터를 머릿 속에 그리고 있는 감독이 그걸 연기할 수 있는 배우를 정확하게 찾아내야 하고,
그 배우가 최대한 그걸 연기해줘야 하는, 모든 상황이 딱 들어맞아야 나오는 드문 경지다.

<색, 계>가 그 결과물이다.

빠르게 전개되는 사건도, 몇 문장 이상 이어지는 대사도
별로 없는 이 영화는 '전쟁''이데올로기의 대립'이라는
상황에서도 어김없이 터져나오는 강렬한 욕망과 집착, 감정의
소용돌이를 냉혹하고 정밀하게 묘사한다.

색色은 색정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중국한자로 색깔이라는 의미도 있다. 모든 사물에는 개인이 받아들이는 색깔이 있다. 애국심, 사랑, 집착, 욕망 등이 색이라면, 계戒는 눈에 보이는 그 색에 대해 신중하고 조심하고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다. - 이안 감독

이안 감독은 양조위의 신들린 듯한 연기와
야하기 보다 처절하기 짝이 없는 3번의 정사 장면, 
고요하지만 긴장감에 터질것 같은 두 주인공의 팽팽한 관계를 통해 '색, 계' 의 상황을 그려낸다.
그리고, 이안 감독은 그들의 '색'이 뭐였는지조차 잘 알려주지 않는다.
집착, 사랑, 애국심, 동포애, 육체적인 욕망, 증오, 외로움, 폭력?

그러고보니, 원래 '욕망' 또는 '색'이란 자기가 가진 욕망도 뭔지 알기 힘든 모호한 거 아닌가?
또, 생각해보면 산다는 게 매일 이런 모호한 욕망과 싸우며 살아가는
'색, 계'의 상황이라서 감정의 여진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나보다.

내가 가진 욕망과 집착, 감정의 소용돌이는 어떤 '개' 같은
현실 속에서도 고개를 쳐들게 마련이다.

영화 <색, 계>는 전쟁을 배경으로 그 간극이 가장 극단적인 상황을 그렸는데,
나도 그 간극을 겪으며, 처리하며 매일을 살고 있다.

욕망을 따라 살자니, 현실을 감당할 자신이 없고,
욕망을 버리고 살자니 괴롭고.

그런 '색, 계'의 극단을 보여주는 백미는 피도 눈물도 없이 끝내 버리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그 장면의 양조위 눈빛과 말이 생각나서 괴롭다.

'말하지마.' '내려가서 계속 놀아'

이안 감독, 그대는 너무 잔인합니다!
인생이 이렇다는 걸 너무 정확하게 말해주면 어쩝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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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잊지 않으려고 쓰는 이야기들 | 2007/11/10 20:44 | DEL
이안 감독의 전작 <브로크백 마운틴>만큼은 아니였어요. 격정적인 사랑의 절절함을 기대하고 갔었거든요. 그런 면에서는 <브로크백 마운틴>이 사랑의 격정을 더 절절하게 표현했어요.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동성과의 긴 시간을 두고 이어지고 끊어지는 사랑이였잖아요.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의 음악이 더 시려 마음을 추스렸었는데, 이안 감독의 신작 <색, 계>는 <브로크백 마운틴>보다 육체 관계에 있어서는 격정적이였지만 마음, 감성에 있어서는 절절해지는 순간..
Tracked from 스테판's Movie Story | 2007/11/11 02:23 | DEL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보다는 20분간의 파격적인 정사 장면으로 화제가 된, 이안 감독의 신작 "색,계"를 보고 왔습니다. 20분간의 무삭제 정사장면이라는 자극적인 홍보에 혹한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이란 것이 이 영화에 끌린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영화를 본 후 직후에는, 글쎄요...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찜찜하고, 좌불안석인 상태였습니다. 처음부터는 그랬던 것은 아니고, 왕 치아즈(탕 웨이 분)가 처녀..
Tracked from A boy who calls himself Bohemian, | 2007/11/11 19:01 | DEL
이안 감독의 색, 계를 봤습니다. 솔직히 브로크백 마운틴에서의 섬세한 표현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기보다는, 그렇게도 소리쳐대던 20분 무삭제 상영 때문이었다고 해야겠지만... 0. 20분 무삭제 개봉, 하지만 저렇게도 빨갛게 물들인 포스터와 적나라한 홍보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이 영화가 '도색 영화'라던가 '포르노그라피'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이 영화에서 크게 세번에 나눠서 등장하는 베드신이 영화 전체의 흐름을 1막,2막,3막으로 나누...
Tracked from Fantastic Lara | 2007/11/18 15:57 | DEL
<색,계>는 간만에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고 이야기하게 만들어 준 영화였습니다. 이안 감독의 명성과 양조위의 존재감, 베니스 영화제 수상 소식만으로도 충분히 기대가 컸는데,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리라는 기우를 말끔히 날려준 작품입니다. 작품 배경은 1930년대 말에서 40년대 초, 일제 점령기 시절의 홍콩과 상해를 그리고 있습니다. 스토리의 두 축은 간단하게 친일파와 항일단체의 대립입니다. 주도면밀하며 경계심이 강한 친일파 장군 역으로 양조위가,..
Tracked from clotho's Radio | 2007/11/18 20:01 | DEL
Wong Chia Chi's Theme주의 :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만 많지는 않아요. 영화가 개봉된지는 몇일 되었지만 저는 이 영화가 왠지 나에게 운명적으로 다가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좀 거창하게 표현을 했는진 모르겠으나 그만큼 기대를 잔뜩 하고 마주하게 된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엔딩 크레딧이 서서히 올라갈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어요. 난 이 영화가 사람들을 나락으로 이끄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BlogIcon GoldSoul | 2007/11/10 20:43 | PERMALINK | EDIT/DEL | REPLY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저도 그랬어요. 극장에서 보고 나와서도 멍했어요.
저는 <아이스 스톰>을 못 봤는데, 다른 글을 봐도 그렇고 정말 좋은 가봐요. 챙겨서 볼려구요.
마지막 장면, 그렇게 뚝 끊어버린 거, 너무 잔인했죠? ㅠ
글 잘 읽고 가요. 저도 트랙백 남겨요. :)
BlogIcon 순간의나이쓰 | 2007/11/10 22:37 | PERMALINK | EDIT/DEL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진짜 그렇죠..
그리고 '아이스 스톰' 정말 좋습니다. 꼭 챙겨 보세요.
BlogIcon Stephan | 2007/11/11 02:22 | PERMALINK | EDIT/DEL | REPLY
들렀다가 트랙백 걸고 갑니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실망이었습니다.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 전형적인 여성의 캐릭터에도... 감정의 적절한 흐름보다는 그 모든 걸 정사장면에서 해결보려는 모습도...
BlogIcon 순간의나이쓰 | 2007/11/11 17:30 | PERMALINK | EDIT/DEL
아 그러셨군요. 어찌 보면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로 볼 수도 있겠네요.
BlogIcon 신어지 | 2007/11/11 15:04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아이스 스톰>도 정말 좋은 영화죠. 어쩌면 이 안 감독의 베스트.
BlogIcon 순간의나이쓰 | 2007/11/11 17:31 | PERMALINK | EDIT/DEL
저도 지금까지 이안 감독의 베스트는 <아이스 스톰>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일 에너지가 충만한 영화는 이번 영화 <색, 계>이구요.
BlogIcon 케노비 | 2007/11/11 19:0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상당히 폭발적이면서 기승전결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좋은 영화였습니다,
트랙백 걸고 갑니다~
BlogIcon 순간의나이쓰 | 2007/12/07 17:31 | PERMALINK | EDIT/DEL
트랙백 보고 들어가볼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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